기사제목 [칼럼]래피의 사색 # 244 / '압구정, 그리고 망(忙)'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칼럼]래피의 사색 # 244 / '압구정, 그리고 망(忙)'

기사입력 2017.04.28 21:1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래피 사진 1.jpg

[사진 = DJ 래피]

X세대, 야타족과 함께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오렌지족이다. 이 오렌지족의 주 활동 무대는 압구정이었다. 압구정동은 본래 압구정이란 정자가 그곳에 있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세조가 조카인 어린 단종을 제거하고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할 때 큰 역할을 했던 책사 한명회가 그곳에 정자를 짓고 자연과 벗하면서 살겠다는 뜻에서 압구(狎鷗)라는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한다. ()은 가깝게 지낸다는 뜻이고, ()는 갈매기를 뜻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심에 가득 찬 일생을 살았던 그는 죽은 후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거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압구라는 이름은 물새와 가까이 지내고 세상 욕심을 잊겠다는 뜻이다. 압구는 본래 '열자'의 황제(黃帝) 편에 나온다. 원문은 이러하다.

 

"해상지인(海上之人), 유호구조자(有好沤鳥者). 매단지해상(每旦之海上), 종구조유(從沤鳥游), 구조지지자(沤鳥之至者), 백주이부지(百住而不止). 기부왈(其父曰), 오문구조개종여유(吾聞沤鳥皆從汝游), 여취래(汝取來), 오완지(吾玩之). 명일지해상(明日之海上), 구조무이불하야(沤鳥舞而不下也)."

 

바닷가에 사는 사람으로, 갈매기를 좋아하는 자가 있었다. 매일 아침 그는 바닷가로 가서 갈매기와 함께 놀았는데, 그에게 오는 갈매기들이 백 마리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그 아버지가 말하길, "듣자니, 갈매기가 너와 함께 노닌다고 하더구나. 네가 하나 잡아 가지고 오면 내가 가지고 놀겠다"라고 했다. 다음날 그가 바닷가로 가자, 갈매기들은 날아올라가 버리고 내려오지 않았다.

 

원문은 갈매기를 구조(沤鳥)로 적었다. ()는 압구정의 구(,갈매기 구)와 같다. 바닷가의 사람이 갈매기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어울려 놀고, 또 그가 잡아가려고 하자 하늘 높이 날아올라가 내려오지 않은 것은, 갈매기가 말을 떠난 경지에서 감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고사의 뒤에는 다음과 같은 논평이 붙어 있다.

 

"고왈(故曰), 지언거언(至言去言), 지위무위(至爲無爲). 제지지소지칙천의(齊智之所知則淺矣)."

 

최상의 말은 언어를 떠나고 최상의 행위는 행동이 없다. 자기 지식이 아는 것에 제한되어 버리면 도()에 이르는 것이 얕아지고 만다. 이는 노자 <도덕경> 사상의 중심 개념인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와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는 말로 설명하거나 글로 개념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고수 역시 그렇다. 최상의 말은 언어를 떠나고 최상의 행위는 행동이 없듯이, 고수는말이 많지 않고 행동이 너저분하지 않다. 고수와 하수를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감정 기복이다. 하수일수록 일희일비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분주하다. 고수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저 "()구나, (안 좋)구나"를 외치며 느긋하고 여유가 있는 탓에 늘 고요하고 안정적이다. 반면 하수들은 항상 붕 떠 있으며, 번잡하고 안정감이 없다. 좋은 일이 생기면 좋아서 난리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죽겠다고 난리고, 술을 마셔도 절제가 안 되어 반드시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고, 누군가로부터 좀 안 좋은 말을 들으면 그 말에 갇혀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고수들은 축이 안정된 사람이다. 하수는 축이 흔들리는 사람이다.

 

# 요약.

 

핵심은 평정심이다.

 

첫째,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 돈을 좇는다고 돈이 생기는 것은 아니듯이, 권력을 탐한다고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는 그저 결과물일 따름이다. 별다른 목적 없이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부득탐승(不得貪勝), 승리를 탐하면 이길 수 없다. 마음의 평화를 얻고 초연하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쓰지 말아야 한다.

 

둘째, 남의 이목에 신경을 적게 써야 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남들의 시선보다 내 마음이 시키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셋째, 천천히 살아야 한다. 제한속도 100킬로미터인 고속도로를 140으로 달린다면 연료 소모도 많고 정서도 불안해질 것이며 흥분해서 들뜨게 되고 피로가 가중된다. 사고 날 확률도 높아진다.

 

어수선하고 분주함을 뜻하는 의미의 한자는 '()'이다. 마음 심() 자에 망할 망()이다. 마음이 망했다는 의미다. 힘쓰지 않아도 될 일에 힘을 쓰면 정말 소중한 일에 힘을 쓸 수 없다. 그렇게 살면 좋은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게 된다. 그저 천천히 가더라도 뒤로만 안 가면 된다.

 

<저작권자ⓒAsiaBigNews & asiabig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91104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