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DJ 래피]
'늧'이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 일의 근원, 또는 먼저 보이는 빌미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항상 좋은 일만 생기고, 항상 내 뜻대로만 흘러가는 인생이 있던가? 쉽지 않다. 인생에서 늧이 사나운 사람이나 일을 만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그 만남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나에게 있다. 늧을 미리 알아채지 못한 것도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럴 때, 남을 탓해서는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짜증만 더 날 뿐이고 절망만 커져가고, 싸움만 커져갈 뿐이다. 그 사람은 그저 그런 사람일 뿐, 보복을 한다거나 앉혀놓고 설교를 한다거나 하더라도 아마 바뀌지 않을 확률이 높다. 사람은 여간해선 잘 바뀌지 않는다. 하여 우리는 늧을 파악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사람에 대한 늧, 일에 대한 늧.
이 세상에는 70억의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그 모든 사람들은 (설사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사생활에 대해, 취향에 대해, 인격에 대해 당신의 이해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삶을 살다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면 법에 의한 처벌을 받을 것이고, 누군가 차별을 받고 부당한 일을 당하면 같이 분개하고 싸워주면 된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을, 또는 그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넘쳐나는 멘붕만 불러올 뿐이다. 살인범을 이해할 수 있는가? 술을 마시고 폭력적이 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가? 그 사람 자신도 자기가 이해가 되지 않는 마당에 어떻게 우리가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초윤장산, 주춧돌이 젖어 있으면 우산을 펼쳐야 한다. 상대의 작은 언행, 주변의 사소한 조짐에서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 '그 사람이 주로 어떤 말을 하는지, 약속은 어떤 방식으로 지켜내는지, 그간 밟아온 이력은 어떻게 되는지, 술을 마실 때는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등의 몇 가지 지표만 주의 깊게 지켜봐도 주춧돌이 젖어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주춧돌이 젖어 있으면 비 맞을 확률이 높다. 나가려면 우산을 펼쳐들고 나가든지, 아니면 아예 나가지 말아야 한다.
변화의 도를 아는 것이 곧 늧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왜 고전을 읽는가? 그것은 옛 것을 배워 새로운 것을 깨닫고,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함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저술한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의 말을 이루고자 한다." 세계와 인간의 관계와 고금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 고전을 읽는 목적이다. 나는 고전과 씨름하면서부터 늧을 파악하는 능력이 미약하게나마 생기기 시작했다.
# 요약.
주역은 바로 '변화의 책'이다. 하여 사서삼경의 <역경>이 되었고, 영어 제목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