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래피의 사색 # 262 / '앎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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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의 사색 # 262 / '앎과 삶'

기사입력 2017.11.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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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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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DJ래피]

예전 같으면 수첩이나 공책에서, 요즘엔 메신저 프로필이나 휴대전화 화면에서 흔히 발견되는 짧은 문구들은 소위 '명언'이 많다. 아마도 각자 마음에 깊이 새겨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매개체로 활용한 것이리라. 그런데 유독 '그거 누가 언제 말한 거냐?'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말 자체의 뜻보다는 그것을 말한 '사람'에 포커스가 맞춰지게 된다.

 

소위 '명언'의 최초 발언자를 추적하려는 행위는 별로 의미가 없다. '누가 먼저 그 말을 했느냐'를 알아내려면 역사 속으로 끝없이 추적해 들어가야 한다. 중요한 건 그 뜻을 명심하고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누가 언제 말했는지가 왜 중요한가? 그리고 알고만 있으면 뭐하나? 앎이 앎으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앎을 '', 즉 실천으로 옮겨야 비로소 앎은 삶이 된다.

 

가령, 사람들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유명해진 'Carpe Diem'이란 문구를 좋아하는데, 이 문구는 호라티우스의 "현재를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으며(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로마의 호라티우스는 BC 65~ BC 8년 시대의 사람이다. 저 말이 어디서 먼저 나왔나를 굳이 따지자면 사서삼경의 시경이 먼저다.

 

시경은 최고(最古)의 시집으로, 주나라 초부터 춘추 시대까지의 시 311편을 풍(, 여러 나라의 민요), (, 조정의 연회에서 주로 불린 시가), (, 선조의 덕을 기리는 노래)의 세 부문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는데, 시경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발견된다.

 

"금자불락 서자기망 (今者不樂 逝者其亡), 현재를 즐기지 않는다면 세월 지나 죽고 만다." <시경, 진풍(秦風) 거린(車鄰)>

 

어떤가? 주나라가 BC 1046BC 771, 진나라가 BC 221BC 206 사이에 있던 나라들이니, 호라티우스 시대와는 비교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언제, 누가 그 말을 했느냐가 아니다. 그것은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저 그 뜻을 반복해서 곱씹으며 되새김질하다보면 앎이 삶이 되어 자연스레 스며든다. 스며들면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숨기려해도 저절로 드러난다. 드러나면 뚜렷해지며, 뚜렷하면 빛나고, 빛나면 움직이며, 움직이면 변화된다.

 

# 요약.

 

앎이 앎으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앎을 '', 즉 실천으로 옮겨야 비로소 앎은 삶이 된다. 앎에는 지식이 필요하지만, 삶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식의 ''는 알 '()'이지만, 지혜의 ''는 슬기 '()'. 지식은 바깥의 것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지만, 지혜는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사소한 것부터, 나부터 어떻게 앎을 삶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결국 사회 전반으로 확대된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이 작은 일부터 실천하고 행함으로써 앎을 삶으로 만들어 간다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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