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키워드는 '오래가기'다. 오래가기만큼 힘든 게 없음을, 오래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는 고전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역사를 보라. 주지육림의 주(紂)왕도, 분서갱유의 진시황도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모든 잘 나감의 끝에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추락이 있다.
''역(易)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라,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뜻인데, 궁이란 궁극에 이른 상태를 이른다. 궁극의 끝에 변함이 없다면 통하지 못하고 오래가지 못한다. 주역의 사상은 한마디로 ‘변화의 도’이고, 그 핵심 키워드는 절제와 겸손이다. 오래가려거든 절제와 겸손만이 답이다.
나는 래퍼로서, 작곡가로서, 방송인으로서, DJ로서, 강사로서, 저자로서, 그 어느 분야에서도 최고가 되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해왔고, 무난하게 잘 해나가고 있다. 나는 비록 천천히 가지만 뒤로는 가지 않는다.
주역의 64괘 중 32번째 괘가 뇌풍항괘다. 뇌풍항은 진상손하, 위에는 진괘 ☳, 아래에는 손괘 ☴인 대성괘를 말한다. 항은 영어로는 Duration, 한자의 뜻은 '항상 항'이다. 항괘의 괘사를 보자.
''항 형 무구 리정 리유유왕 (恒 亨 无咎 利貞 利有攸往)''
'항은 형통하고 허물이 없다. 꿋꿋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고, 나아감이 이롭다.'는 뜻이다. 결국 '항'은 '변하지 않고 오래간다'라는 뜻이다. 말이 좋아 항이지,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쉽지 않다.
우리의 삶은 기본적으로 복잡계라 의외의 일로 가득 차 있으며, 돌발적이고 우연적이며 예측하기 어렵다. 마음 써서 심은 꽃은 피지도 않고, 무심히 심은 버드나무는 그늘을 드리운다. 그렇다. 나는 지금 무심히 버드나무를 계속 심는 중이다. '되면 하고, 아님 말고'의 정신으로 아무것도 기대하는 바가 없고 희망도 품지 않으니 무슨 근심이 있으리.
묵자에 '우물 맛이 좋으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다른 우물보다 먼저 마르게 된다'는 말이 있다. 감정선갈(甘井先竭), 단 우물이 먼저 마른다. 우물이 달고 맛있으면 결국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들어 물을 다 퍼가게 되고, 머지않아 바닥을 보이고 말 것이다. 어쩌면 물맛이 당장 달지는 않아도 평범한 우물이 결국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고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될 수 있다.
장자에도 표범이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결국 가죽이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구절인 ‘피위지재(皮爲之災)’, 즉 예쁜 가죽 때문에 당하는 재앙이 나온다. 예쁜 가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언뜻 아름답고 훌륭해 보이지만 궁극적인 행복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 요약.
더는 물이 안 나오는 우물보다는 오래 마르지 않고 샘 솟는 우물이 되고 싶다. 모두 남보다 더 잘나기 위해서 정신없이 짓밟고 달려가는 세상에서 느리고 좀 못난 래피로 살아가려고 한다. 천천히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마지막까지 완주할 수 있느냐가 결국 인생의 마라톤에서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