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흉화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말과 행실이다. 공자의 가르침을 말한 <논어>의 마지막 문장은 ‘삼부지(三不知)’다.
“천명(天命)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禮)를 모르면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없으며, 말(言)을 모르면 사람을 알 수 없다.”
명(命)에 대한 앎은 곧 '나'에 대한 앎이다. 나의 격(格)이나 오행 상태를 통해 나의 어떤 부분이 지나치며, 어떤 부분은 모자란 지 알아야 명을 안다. 명리학은 굿을 하려고, 부적을 쓰려고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나의 '명'을 알기 위한 학문이다. 명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음양과 오행의 불균형 정도를 알기에 나아갈 때는 나아가고, 물러날 때는 물러난다. 중용의 첫 구절 '천명을 일컬어 성이라 하고 그것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한다.'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말(言)은 무엇인가? 言은 辛과 口의 합자(合字)인데, 辛은 바늘의 모양을 본떴다. 뾰족한 바늘과 입의 만남, 즉 言은 그 자체에 이미 '삼가 말하라'라는 뜻이 있다. 공자는 구사일언(九思一言), 즉 아홉 번 생각하고 말하라고 했으며, 풍도(馮道)는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라 했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풍도는 정치적 혼란기인 당나라 말부터 다섯 왕조 동안 11명의 임금을 섬기며 벼슬을 했다.
한자 품(品)의 구조를 보자.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다. 말이 쌓이고 쌓여 결국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 내가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좋은 말을 쓰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나쁜 말을 쓰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 말에는 영적인 힘이 있으며 말은 의식의 일부다. 부정적인 말을 쓰면 무의식에 깊게 각인된다. 이것이 바로 흉함으로 빠져들어 가는 지름길이요, 스스로 지어내는 화의 뿌리가 된다. 서경 <태갑(太甲)>에서는 "하늘이 지어낸 화는 오히려 벗어날 수 있지만, 스스로 지어낸 화는 벗어날 길이 없다."고 했다.
# 요약.
지저귀는 새처럼 정겨운 말을 하는 사람, 나무의 초록처럼 싱그러운 말을 하는 사람, 바람처럼 살랑이는 말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떠올리기만 해도 흐뭇하다. 말과 행실은 흉함이 사라지게 하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