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래피의 사색 # 284 / '월드컵과 기필(期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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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의 사색 # 284 / '월드컵과 기필(期必)'

기사입력 2018.06.1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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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문화칼럼리스트]
DJ래피.jpg

[사진출처 = DJ래피]
피파랭킹 독일 1, 멕시코 15, 스웨덴 24, 대한민국 57.
 
기대는 했지만, 실망은 하지 않았다. 마음을 주었지만 상처받지는 않았다. 이기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게 기본값의 힘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이다. 다시 한번 상기하자. 대한민국 축구의 피파랭킹은 57위며, 이게 기본값이다. 기본값의 힘은 인생에서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십중팔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보통 "십중팔구 성공한다"보다는 "십중팔구 실패한다"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 피파랭킹 57위는 월드컵에서 십중팔구 지는 게 기본값이다. 하지만 그 드문 '한둘'의 이변, 혹은 승리에 사람들은 열광할 뿐, 지는 것에는 온갖 독설과 선수나 감독을 향한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라캉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현실계, 상상계, 상징계라는 용어로 나누어 표현했다. 현실계는 지금 나의 현재를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 축구의 현실계는 57위다. 그런데 인간은 항상 현재 나에게 없는 것을 욕망하면서,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아직도 월드컵 4강을 상상한다. 현실계에서 상상계로 이동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욕망이 이동하며 반복되는 곳이 상징계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상징계가 계속 펼쳐지는 것이 곧 인생이다. 삶은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늘 기분이 좋아야 한다는 압박감,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 특히 무턱대고 긍정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비극은 '우리는 매일 기분이 좋아야 한다', '우리는 매일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과 집요함에서부터 온다. 고통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새로운 고통을 만들어낼 뿐이다. 오히려 실패를 겪음으로써 오는 고통을 거부하지 않고 오롯이, 담담하게 받아들일 때, 충격은 줄어든다
 
공자가 절대 하지 않은 4가지가 있다자절사(子絶四), 즉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근거 없이 추측하지 않고, '기필'을 버렸으며, 편협하게 고집을 부리지 않고, 나만이 옳다 하지 않았다이 모두를 하나의 속성으로 묶을 수 있는데, 그게 바로 겸손이다.
 
욕하지 말자. 대한민국 축구 선수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 분명하다. 저 선수들 중에 과연 지고 싶었던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인생은 기필(期必)코 승리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패배와 실패가 더 많다
 
# 요약.
 
안전무불호인 眼前無不好人, 두리무불평사 肚裏無不平事, 시위평생지락 是爲平生至樂. 눈앞에 미운 사람이 없고 마음에 불평할 일이 없는 것이 평생의 지극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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