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사진제공=DJ래피]
얼마 전까지 우리 집은 난데없는 홍시 풍년이었다. 냉동실에, 거실에 온통 홍시 천지였다. 미처 홍시가 되지 못한 감들은 반려묘 막내 순돌이의 축구공 장난감이 되어 꽃향기 날리듯 이리저리 나뒹굴기도 했는데, 어느덧 그 많던 홍시도 바닥을 보였고, 홍시 덕분에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땡감이 홍시가 되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언제쯤 말랑해질까, 손가락으로 눌러보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하나씩 완성되는 홍시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홍시가 되기 전, 딱딱한 땡감일 때는 까기도 힘들고 떫고 맛도 없다. 그러나 홍시가 되는 순간 껍질은 까기 쉽고 부드러우며 먹기 편하고 달콤하다. 한 입 가득 물고 있으면 뇌에서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이 샘솟는다.
사람도 성숙하기 전에는 딱딱하고, 대하기 힘들다. 귀가 막혀 있어 들으려 하지 않고 먼저 자기 말만 하려고 달려든다. 그것도 부드러운 말이 아니라 가시가 돋친 말. 반면에 성숙된 사람은 홍시처럼 부드럽다. 귀가 열려있어 말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말을 들을 줄 안다. 그래서인지 성인(聖人)의 성(聖) 자에는 '귀 이(耳)'가 제일 먼저 나온다. 말하기 전에 먼저 듣는다는 의미 아닐까? '듣기'가 이렇게나 어렵다.
분명 공자도 홍시의 매력을 알았으리라. 그래서 그 옛날 공자는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 즉 나이 60에도 귀가 순해지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니 홍시처럼 귀가 순해져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했던 거 같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에도 어른들은 '까치밥'이라며 홍시를 남겨놓곤 했다. 배고픈 까치가 날아와 요기하라는 마음에서다. 홍시는 이렇게 넉넉함까지 갖췄다.
# 요약.
홍시는 과연 군자의 과일이다. 나는 홍시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온시지인(溫枾知人), 법시창문(法枾創文), 즉 홍시를 학습하여 사람을 알고, 홍시를 본받아 사람의 무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