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빅뉴스 김동효문화칼럼리스트]
겸손은 Humility, 유머는 Humor. 이 둘은 같은 어원에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삶이 얼마나 웃기고 의외의 것인지, '뜻밖에'의 연속인지를 알아야만 우리는 겸손해질 수 있다. 겸손은 결국 우리가 세상 모든 것을 다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며, 그럴 때에만 우리는 웃음을 보일 수 있다. 주역의 15번째 괘인 지산겸은 곤상간하, 즉 위에는 곤괘 ☷, 아래에는 간괘 ☶인 대성괘로, 산이 땅속에 들어앉아 있는 형상이다. 산이 땅속에 들어앉아 있으니, 그 자체로 얼마나 겸손한 모습인가?
누구도, 그 무엇도 완벽하지 않다. 아니 완벽할 수 없다. 불편함이나 좌절, 결핍은 반드시 있는 법이다. 따라서 우리 힘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컨트롤하고, 그럴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며, 거기서 반면교사나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나는 사투리를 쓰면서 편하다는 인상을 줄 때도 있지만, 뜬금없는 편견과 무시를 당할 때도 많다. 나는 경차를 타면서 반값 할인 등의 혜택과 편리함도 있지만 때론 어이없는 편견과 무시를 당할 때도 많다.
내가 사는 곳은 수서 SRT 역 바로 건너편 마을인데, 고속 열차인 SRT를 타려면 도보로 5분만 걸으면 된다. 부산, 광주 등 장거리 이동 시에 이보다 더 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 살기 위해서는 SRT 역이 생기면서 급작스럽게 늘어난 차량으로 인한 교통정체를 견뎌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기막힌 인생의 법칙 아니겠는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공존 및 공평한 등가의 교환.
삶의 이러한 등가성을 애써 부정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신 승리를 위해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다 수용하면서도 긍정적인 면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 낫다. 차량 정체가 심하다면 출퇴근 시간에는 책을 읽으면서 가급적 전철을 이용하고, 한산한 시간에 차량을 이용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겸손이라는 방법론이다.
슬기로운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에 그걸 바꿀 수 없다고 징징거리지 않는다. 우리는 편한 입지적 조건과 교통정체 가운데 하나를 가지는 게 아니라, 대개의 경우 둘 다를 동시에 갖게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어느 것에다 초점을 맞추느냐 하는 것이다. 추한 것만 바라보고 살 것이냐,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며 살 것이냐, 우리가 택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