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김동효의 세상바라기 '영화 동주와 귀향에서 배우는 타산지석과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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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동효의 세상바라기 '영화 동주와 귀향에서 배우는 타산지석과 반면교사'

기사입력 2016.09.0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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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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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김동효]


타산지석과 반면교사. 이 두 가지는 뭔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 경계가 상당히 모호해 보인다. 그런데 좀 깊게 사색해 보면 그 활용에 있어 미묘한 차이가 있다.
 
타산지석은 <시경> 의 소아 편 '학명'이라는 시에서 등장하는데, 다른 산, 즉 나와는 별개로 보이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뜻인데, 확장 해석하면 다른 사람의 사소한 언행이나 약간의 단점이라도 나에게는 교훈이나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교사는 1960 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승은 스승인데, 반대의 가르침을 주는 스승 즉,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부정적인' 면이나 잘못된 일 또는 실패에서 얻는 깨달음 또는 그를 통해 가르침을 얻는 상황을 말한다.
 
요컨대, 어떤 사람의 비행을 보고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반면교사이고, 어떤 사람의 작은 행동을 가지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타산지석이다. 반면교사는 반드시 나쁜, 혹은 안 좋은 일이고 타산지석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이렇다.
 
1> 영화 '귀향'에는 위안부의 징발을 담당하는 업자가 나온다. 일본군의 위탁을 받은 업자인데, 충격적인 것은 위안부 징발 담당 중에는 한국인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보면서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그런 인간 이하의 인물들을 반면교사 삼아 "나는 절대로 저렇게 비루한 삶을 살지는 말아야지"라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2> 영화 '동주'에서 시인 윤동주는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겪은 인물이다. 창씨개명과 같은 상황에서 시를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그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에 대해서는 상대적 열등감도 있다. 언뜻 보면 소심해 보일 수도 있으나, 시인 윤동주는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반성하고, 참회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윤동주의 이런 긍정적 소심함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는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하다.
 
# 요약.
 
세상은 배울 것 천지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곧 내 스승이다. 배울 것은 태산이고 얻을 것 또한 그만큼 있다. 늘 곁에 있는 친구도 장점이 많은 스승일 수 있고, 못 잡아먹어 안달인 직장 상사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배워야 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눈을 부릅뜨고 폭력적 언사를 구사하는 부조리 앞에 나는 한없이 부끄럽다. 영화 '동주'에서 문성근이 연기했던 시인 정지용이 윤동주에게 했던 대사가 아직 맴돈다. "부끄러운 걸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게 진짜 부끄러운 거지."

[김동효칼럼리스트 기자 nikufes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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