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래피의 사색 # 20 '사랑도 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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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래피의 사색 # 20 '사랑도 의리다'

# 20 '사랑도 의리다'
기사입력 2016.11.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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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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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동효(DJ래피)]

래피의 사색 # 20 / '사랑도 의리다'

 

근래 들어 후배, 친구들의 결별 소식 또는 헤어짐을 고려 중인 상태에 대한 소식이 제법 들린다. 왜 그들은 결별해야만 했으며, 왜 헤어짐을 고려 중인 걸까. 사실 이것은 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 전반을 관통하는 이슈다. 바로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의 시발점. 그것이 뇌관이 되어 위태위태하다 어느 순간 폭발해버린 게 아닐까.

 

뇌 과학자들은 사랑도 화학 작용의 하나라고 말한다. 사랑의 감정을 조절하는 기관은 뇌의 변연계인데, 여기서 사랑의 각 단계마다 신경 전달 물질이 분비된다. 그런데 사귄 기간이 18~30개월쯤 되면 항체가 생겨 사랑과 관련된 화학 물질이 더 이상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이 시들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쳐다만 봐도 가슴이 콩닥거리던 연애 초반의 설렘이 평생을 갈 수가 있겠는가? 설렘에 우선 가치를 둔 인스턴트식 사랑은 얼마 못 가 또 다른 사랑을 만나야만 다시 설렐 수 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사람을 찾고 또 다른 사람을 찾고, 무한 반복이다. 사랑의 최고 가치는 떨림과 설렘보다는 서로의 존재 자체에서 찾아야만 한다.

 

사랑은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지는단계에서 출발해 사랑을 하는단계를 지나 사랑에 머무르는단계에 도달하는 기나긴 여행과도 같다. 그러므로 열정이 식었다고 해서 사랑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럴 때 넌 변했어라고 섣불리 규정짓거나 다른 사람을 찾으려 기웃댈게 아니라 서로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랑도 '의리'.

 

사랑에 빠지기는 쉬워도 사랑에 머무르기는 쉽지 않다. ‘사랑에 머무는 단계는 현실 속에서 서로의 모든 것을 나누며 행복하고 편안한 가운데 서로의 존재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에 머물기 위해서는 상대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애정을 가지고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가장 힘든 부분이다. 헤어지는 연인이나 부부의 가장 대표적 클리셰인 '성격차이 때문에 헤어졌어요' 가 바로 이 부분에서 비롯된다. (둘 중 어느 한 구성원의 '치명적인 잘못'으로 인한 결별은 여기서 논외로 하겠다.)

 

성격이란 대체 무엇인가. 무엇이길래 툭하면 성격차로 헤어졌다고 둘러들 대는가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 보아도 성격이란 바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이나 품성'을 뜻한다. 분명히 '고유의' 성질이라고 되어있지 않나.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의' 성질이란 말은 기본적으로 '각자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최초의 명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목소리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모든 고려 대상이 다 다른 거, 그게 정상이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라는 존재는 바로 ''하나 밖에 없다.

 

나는 짜장면을 좋아하고 그녀는 짬뽕을 좋아한다고 치자. 어떻게 그를, 또는 그녀를 내 취향으로 바꿀 것인가를 궁리하다가는 어김없이 싸우게 된다. 그걸 좋아하도록 그대로 두던지, 내가 취향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싸우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서로의 양보를 유도해 접점을 찾는 선에서 마무리를 해야 '성격차'로 인한 헤어짐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격차로 헤어졌다는 말은 결론적으로 그 사랑을 서로가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허울좋은 핑곗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세상은 사랑을 지속적으로 시험한다. 사랑을 뒤흔드는 수많은 유혹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여러 상대와의 사랑이 가능하게끔 생물학적으로 이미 디자인되어있다. 종족 번식을 위한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역사는 불륜의 역사이기도 하다. 암수 간 금실이 좋은 거위나 백조도 실은 바람둥이이고, 박새 새끼들의 경우 약 40퍼센트가 불륜에 의해 태어난 것이라고 하니, 사랑이 변치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사랑도 '의리'의 문제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현실 속에 옅어져 가는 사랑의 끈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또 확인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랑은 확인하는 게 아니라 확신하는 것이다. 자꾸만 확인하려 들면 의심만 늘게 된다. 사랑을 시작한 이상, 그 사랑을 이어 가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능동적으로 그 사랑을 서로가 지켜 내야 하는 것이다.

 

# 요약.

 

"처음 사랑에 빠진 남녀는 낭만기에 접어든다. 그러나 곧 두 사람은 서로의 실체를 확인하며 실망에 빠지거나, 현실적인 생활 속에서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때가 바로 빙하기이다.이 시기를 지혜롭게 극복하면, 그다음 단계론 남녀의 구분을 떠나 반려자에 대한 인간애가 만들어진다. 이 마지막 부분을 인간주의 시대라고 한다.”


많은 영화와 소설이 ‘낭만기’에서 사랑의 연대기를 끝낸다. 관람객을 기분 좋게 극장에서 내보내기 위함이요, 간접 경험의 포만감 속에 빠진 채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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