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래피의 사색 # 56 '새 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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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래피의 사색 # 56 '새 학기'

# 56 '새 학기'
기사입력 2016.12.0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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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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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동효(DJ래피)]

피의 사색 # 56 / '새 학기'

 

개강을 앞두고 자료제출용으로 음악저작권협회로 부터 그간 내 이름으로 만들어진 작품목록을 받아보니 148곡 정도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음악의 길을 가야하나 회사원의 길을 가야하나 두 갈래 길을 두고 참 많이 고민했었다. 나는 결국 두 갈래 길 중 음악의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인생 모두를 바꾸어 놓았다. 내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즐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음악이 좋아서, 작곡이 좋아서였다. 늦깎이 독학으로 시작한 작곡인생에 국민적 히트곡이나 소위 말하는 대박곡은 없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내가 만든 곡들을 쭉 선곡해 놓고 안부르고 틀어만 놓아도 매우 짜릿하다. 라디오에서, 파티에서, 공연장에서, 행사장에서 DJ 장비를 펼쳐놓고 음악을 트는 행위 또한 본질적으로 내 스스로 즐기기 위함이지 폼을 잡거나 슈퍼스타 DJ로 보이고자 함이 아니다.

 

나는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가장 먼저 책부터 읽고, 곧 바로 음악의 순서로 넘어간다. 대박곡을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빅 히트곡을 써서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나 스스로 즐거워지기 위해서다. 아울러 일생을 통해 내가 주로 관심을 가진 건 내 감각의 기쁨들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스스로 즐겁지 않다면 어떤 것이 주어진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시튼 동물기>로 유명한 어니스트 톰슨은 어려서 박물학자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아버지는 그따위 일은 돈도 벌 수 없고 미래도 없다.”며 그를 꾸짖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던가, 하고자 하는 일은 따로 있으나 안정된 길을 걸으라는 부모들의 말은 대체 어디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자신의 길이 아닌 주변의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길에 몸을 맡기는 것으로 부터 '불안'은 시작된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남보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쓴다.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된다. 나는 새 학기 첫 강의때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 할 것이다. "누군가의 계획이나 조종에 따르지 말고 스스로 즐겁고 신나는 일을 하라. 거기서 너만의 길과 미래를 찾아라. 자기 자신으로 행동하라. 다른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이 다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누가 먼저 앞서나가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소설가 박완서의 등단은 40세였다.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발표한 것 역시 그의 나이 60세 때였다. <반지의 제왕>은 톨킨이 62세에 발표한 작품이며, 히치콕은 61세에 필생의 역작 <사이코>를 완성했다. 칸트는 57세의 나이에 <순수이성비판>을 완성했고, 하이든은 70세에 사계를 완성했다. 괴테는 83세에 파우스트 제2부를 완성했다. 우리는 '즐거움'이라는 일생의 키워드를 통해 천천히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 빨리 어딘가에 도착하기만을 바란다.

 

롤랑 바르트는 즐거움플레지르(Plaisir)쥬이상스(Jouissance)’로 구분한다. 쉽게 말해 '플레지르는 글을 곧이 곧대로 읽는 듯한 즐거움이며, ‘쥬이상스는 행간을 통해 보는 즐거움이다. 인식론의 지평에서 모순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론에서 모순은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플레지르는 칸트적 즐거움이며, ‘쥬이상스는 헤겔적 즐거움이다. 즐거움을 전통적인 인식론의 틀 안에서 고민할 때, 그것은 플레지르의 개념을 벗어나지 못한다. 존재를 긍정하고 그것의 모순조차 그것의 일부로 인정할 때, 즐거움은 쥬이상스가 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즐거움은 무엇보다 쥬이상스. 예술의 즐거움은 쥬이상스에 속하며, 이는 작품을 읽는 즐거움이 아니라 텍스트를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인 것이다.

 

# 요약.

 

나는 죽을 때까지 뭔가를 배우고 끊임없이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업데이트하며 살 것이다. 방향이 정해졌다면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는다. 인생에 늦은 때란 없으니까.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말고 끝까지 가자. 인생이란 원래 소설같은 거 아닌가.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타인의 말보다 나 자신의 이성을 더 신뢰하고, 남의 생각이나 판단을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지 말자. 이 세상에는 단순히 경제력이나 물질적 성공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가치가 있다. 신입생들이여, 가슴 뛰는 일을 하라.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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