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래피의 사색 # 74 '스승'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칼럼] 래피의 사색 # 74 '스승'

# 74 '스승'
기사입력 2016.12.14 18:4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KakaoTalk_20161102_125455076.jpg
[사진=김동효(DJ래피)]

스승의 날이다. 내 인생의 스승 처리형님께 문자를 보냈다. 답 문자가 왔다. "빈손으로 와서 뭐든 들고 가" 스승의 마음이란 게 이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다.

 

한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반드시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 유비의 곁에는 제갈량이라는 걸출한 책사가 있었다. 융중에 초가집을 지은 제갈량은 10년 동안 천문과 역사, 지리, 군사에 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풍구라는 스승 밑에서 목이 마르면 찬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식은 밥을 먹으며 밤낮으로 공부에 전념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제갈량을 와룡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899년 아인슈타인이 취리히 국립공과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의 지도교수인 민코프스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과학계에서 빛나는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을까요?” 민코프스키는 아인슈타인을 어느 건설 현장으로 데리고 가더니 인부들이 막 발라놓은 시멘트 바닥을 밟았다. “선생님, 엉뚱한 길로 들어오신 것 아닙니까?” “그래, 맞네. 잘못된 길이야. 아직 단단하게 굳지 않은 땅, 즉 새로운 분야로 가야만 깊은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네. 이미 단단하게 굳은 땅,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거쳐갔던 곳에는 발자국이 찍히지 않지.” 이 일을 계기로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는 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모르는 것을 묻지 않는 것은 쓸데없는 오만이다. 브라질의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룰라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지만 불치하문의 정신으로 누구에게든지 배움을 요청한 것으로 유명하다. 부족한 지식을 쌓아 대통령이 된 그는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경제 개혁을 단행하여 낙후된 브라질을 끌어올렸고,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산하 570개 기업, 13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자신이 성공한 이유는 하늘로부터 세 가지 은혜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세 가지 은혜란 가난한 것, 허약한 몸, 못 배운 것이었다. 그는 가난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서는 잘 살 수 없었고, 허약했기 때문에 건강에 힘썼고, 학교에 갈 수 없어서 세상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받들어 배우는데 노력하여 많은 지식과 상식을 얻었다.

 

불치하문의 정신, 즉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우는 정신이야말로 인생을 멋지게 변화시키는 비법이다. 당나라 때의 사관인 오긍이 쓴 정관정요를 보면, 현명한 군주와 어리석은 군주를 가르는 차이 또한 한 마디로 경청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관 2, 태종이 위징에게 질문을 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현명한 군주라 하고 어리석은 군주라 하오?”

 

위징이 말했다.

 

군주가 영명한 까닭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널리 듣기 때문이고, 군주가 어리석은 까닭은 편협되게 어떤 한 부분만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경을 보면, ‘선현들이 말씀하시길 풀을 베고 나무를 하는 사람에게도 물어보라 하셨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옛날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릴 때에는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천하의 현명하고 덕망 있는 선비를 초빙하고, 시야를 넓혀 민간의 소리를 들었으며, 백성들의 정서를 살펴 정치를 맑게 했습니다.”

 

멘토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떠나며, 자신의 아들인 텔레마코스를 보살펴 달라고 한 친구에게 맡겼고,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멘토다. 그는 친구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텔레마코스의 친구, 상담자, 선생님,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 주었다. 그 후로 멘토라는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멘토는 단순히 똑똑하거나 경험 많은 사람이 아니라 삶의 통찰을 매개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멘토는 가르침이 아니라 배움을 사랑하며,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공유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철학자 들뢰즈의 말처럼 우리는 나처럼 해봐라고 말하는 사람 곁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게 없다. 오로지 나와 함께 해보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만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산파가 산모의 출산을 도와주는 것에 빗대어 산파술이라는 문답법을 즐겨 사용했는데 산파술은 스승이 제자에게 직접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스스로 지혜를 깨닫도록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만일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생애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리더와 추종자의 진면목은 공자와 그 제자들에게서 진수를 엿볼 수 있다. 3천여 명의 제자와 이 가운데 학식이 뛰어난 72명의 제자가 있었기에 공자의 사상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공자는 많은 제자 가운데 자공을 많이 아끼고 혹독하게 대했다. 한번은 자공이 스승에게 이렇게 다짐하는 말을 했다. “전 남이 나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을 저 역시 남에게 하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공자의 대답은 싸늘했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자공은 자신을 낮추고 스승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공은 당대의 부자였기에 굳이 공자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아도 됐다. 요즘으로 보면 재벌 회장이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공부하는 것과 같다. 그 수업 시간에 교수가 재벌 회장에게 회장님은 아직 그만한 그릇이 안 됩니다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가르침에 엄격했던 교육자 공자의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공은 때로는 스승에게 엄청난 구박을 당했지만 충심으로 섬겼다. 스승이 죽자 자공은 다른 제자들이 3년상을 치른 것과는 달리 무려 6년상을 치렀다. 진정한 리더와 추종자의 관계에는 사랑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는 관료적 문화에서 보여주는 이기적이고 기득권적이고 맹목적인 충성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리더에게는 대부분 현자형 참모가 있었다. 공자에게는 제자들이, 월왕에게는 복수를 도운 범려가, 버핏에게는 멍거와 같은 인물이 그렇다. 공자나 예수는 두말할 것도 없고 연암 박지원, 경제학자 케인즈 등의 사상은 제자나 추종자들이 있었기에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가능했다. 연암에게는 박제가와 이덕무 등 제자 그룹과 홍대용 같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벗이 있었다.

 

# 요약

 

子曰(자왈) : 三人行(삼인행), 必有我師焉(필유아사언), 擇其善者而從之(택기선자이종지), 其不善者而改之(기불선자이개지).

 

자기주도적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배울 것을 찾는다. 모든 곳이 자신을 일깨우는 교육 현장이자 자신을 가다듬는 도량이다. 공 선생이 말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거기에 나의 스승이 있다. 앞선 자를 보면 따라잡아서 같아지도록 하라. 뒤처지는 자를 보면 교훈을 찾아서 스스로 반성하라.” 누가 계시를 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시를 받고자 하는 마음가짐, 누구에게서든 배움의 요소를 찾는 자세가 중요하다.

<저작권자ⓒAsiaBigNews & asiabig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43435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