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교사 정재훈의 "꼰대가 바라보는 세상이야기" EP 2. 딜레마Ⅱ. 학교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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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교사 정재훈의 "꼰대가 바라보는 세상이야기" EP 2. 딜레마Ⅱ. 학교란 무엇인가??

기사입력 2016.12.1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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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정재훈 칼럼리스트EP2. 딜레마학교란 무엇인가?
정재훈.jpg
[사진 = 정재훈 컬럼리스트]
 
EBS프로그램에서 방영되어 한창 인기가 있었던 프로그램 제목이 '학교란 무엇인가'이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해외 사례들과 비교해보고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많이 보여서 개인적으로 참 좋았던 프로그램이다. 여러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학교라는 곳은 내 인생의 1/2을 담고 사는 곳이기도 하고 이 곳 생태계를 구성하는 한 사람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학교를 잘 이끌어나가고 싶은 욕심이 모든 교사에게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학교가 예전만큼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윤봉길 의사나 안창호 의사 등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교육을 통해 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역설하셨고, 전쟁 폐허가 된 국토에서 나라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천막 속에서 교육을 받았던 작은 씨앗들이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호롱불을 밝혀가며 공부를 하여 세계에서 유래없는 고도성장을 한 나라를 만들었고, 많은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의 선봉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으로 만든 기반 위에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 민족의 교육열은 세계 누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는 그런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는데 역부족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무엇이 학교의 위기를 가져온 것일까?
 
많은 학자들이 학교 내부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획일적인 교육방법, 학생들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니 학생들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엘리트만을 위한 교육도 문제라고 하고 학원 선생님보다 경쟁력 없는 선생님들도 문제라고 한다. 물론 그런 것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지만 그런 문제를 해결한다고 학교의 위기가 해소될 것 같지 않다.
 
1980~90년대,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하고 있을 때 나는 학생이었다. 학창시절 학교는 무서운 곳이었다. 특히 남자 선생님들은 하나 같이 무서운 몽둥이를 들고 다녔고 절대권력자였다. 그 속에서도 난 학교가 재미있었다. 학교에가면 더 많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벌을 받거나 맞으면서도 친구들과 함께여서 재미있었다. 음악이나 체육시간도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체벌도 없고 시설도 많이 좋아진 지금 학교의 아이들은 그다지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학원을 더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다. 학교에서는 자주 졸거나 자던 아이도 학원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수업시간에 학원숙제 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학생들이 학교에 흥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학교의 위기가 온 것일까?
 
우리나라 교육을 이야기하는데 사교육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3번째로 사교육을 많이 하는 나라이다. 그리스, 터키가 우리보다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나라이며, 세계에서 사교육을 가장 하지 않는 나라는 핀란드이다. 그런데 세계교육시장에서 우리와 자웅을 겨루는 핀란드의 1일 평균 사교육 시간은 우리의 1/36배이다. 무엇이 핀란드의 교육경쟁력을 강하게 만든 것일까? 교육계에서는 요즘 핀란드식 교육을 도입하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많다. 핀란드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협력이라고 한다. 경쟁보다는 공존을 가르치는 학교 분위기는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서 도움과 배려를 경험하도록 만들고, 그런 분위기는 학생들이 학교를 즐겁고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든다. 노력하는 자보다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핀란드의 사례를 보면 사교육에 대한 투자가 없어도 교육 경쟁력은 충분히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교육이 잘 이루어지는 나라를 보면 교육에 대해 비교적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교육의 모델이 된 미국의 교육만 보아도 백년까지는 아니지만 철학이 기반이 되어 장기적인 교육정책이 추진되어왔다. 진보주의, 본질주의, 항존주의, 재건주의 등이 교육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교육관이 이전의 교육관을 완전히 폐기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점점 보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난 우리나라 교육부 관계자들을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안타깝다. 교육부 장관부터 교육전문가가 없다. 다른 부서 장관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교육부 장관을 하기도 하고 교육부 이름이 갑자기 바뀌거나 다른 부서와 통합되는 등 우리나라 교육은 확고한 철학이 없다. 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교육의 수장을 하며 교육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교육을 한 번도 안해 본 정치인이 교육을 다루면 경제논리와 정치논리로 밖에 교육을 다룰 수 없는 것이다.
 
일선학교에 있는 교사들은 학문적 결과로 만들어진 교육이론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 교사와 교수가 바라보는 교육의 의미는 많이 다른데 하물며 교사와 정치인의 시각은 얼마나 다를까? 교육부 장관에게도 교육철학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 가진 교육철학은 자신 측근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철학을 가져와서 이야기하는 이론일 뿐이지 오랜 교육경험에서 나온 철학이 아니다. 결국 그들의 교육철학은 검증되지 않은 어설픈 철학인 것이다. 철학이 없으니 우리 교육은 정권이 바뀌면 논갈이를 하듯 뒤집힌다. 대부분의 고위 교육관계자들은 임용되면 이전에 실시했던 정책이 실패했다고 이야기하고 학생중심 교육이라는 포장을 하여 새로운 교육정책을 발표하곤 한다. 이전의 교육정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이 생기면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명칭이라도 바꾼다. 그 정책을 자신의 치적으로 만들어야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사회가 시끄럽다. 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나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자는 사람들의 의도가 교육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라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누가 보아도 교과서는 다양한 것이 좋다. 역사는 보는 사람들마다 다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교과서는 누가 집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흔히들 잘못 쓰는 말이 틀리다다르다이다. 지금의 검인정 교과서는 교과서마다 다른 것인데 틀리다고 하고, 심지어 그것에 정치적 프레임을 끼워 넣어 강제로 한 권으로 만드는 일은 지극히 비교육적이고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이 정권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때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의견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 때로는 변절도 하는 것이 정치이다. 정치는 짧은 순간 판단이 중요하고 뚜렷한 결과물이 득표로 연결되기 때문에 결과에 목숨을 걸게 된다. 표를 위해 명분과 이익을 좇는 것이 정치라고 한다면 교육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교육은 뚜렷한 결과물도 없고 타협의 대상도 될 수 없다. 정치적인 성격과 전혀 맞지 않는 교육을 정치인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교육정책은 자주 이랬다 저랬다 바뀐다.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으면서 이전의 사례를 조금만 변형시켜 껍데기만 바꾸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교육이 이 정도로 경쟁력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한 나라의 교육을 오랜 시간 걸쳐 철저한 검증도 하지 않고 철학도 없이 그냥 시험 삼아 해보고 안되면 말고 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담보한 무모한 행위인 것이다.
 
미래는 전문가가 살아남는 시대이다. 나도 교육에 있어 전문가가 되기 위해 대학원도 가고 연수도 듣고 동료교사들과 의견도 나누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비전문가인 정치인이 교육부 장관을 하면서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선생님들에게는 전문성을 위해 노력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참 우스운 딜레마이다. 전문성이 부족하면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전문성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정책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난 앞으로 교육부 장관은 교사 출신을 임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10년만 있어도 학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학교를 알아야 문제에 대한 대책이 설 것이다.
 
파레토의 법칙이라 불리는 2:8 법칙이 있다. 단체활동에서 20%의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나머지 80%의 성과를 내며, 반대로 20%의 사람은 논다는 것이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열정적이지는 못하다. 일부 선생님들은 학교를 단순히 생계유지를 위한 직장으로만 생각으로 한다. 그런데 학교는 어떠한 직장보다 인간과 인간이 많이 부딪치는 곳이다. 의사라는 직업도 선생님만큼 많은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의사는 본질적으로 사람 자체보다는 질병을 상대하는 직업이고 질병이 고쳐지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종료된다. 교사는 미성숙한 인간 자체를 상대한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졸업을 하면 끝나지만 교사의 영향력은 학생의 평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도 학창시절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고 교사의 꿈을 꾸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을 가졌을 때는 나도 같이 적극적으로 행동을 했고, 담임 선생님이 모든 것을 귀찮아하고 부정적일 때는 나도 왠지 학교가 싫었다.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을 통해 어른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학생들이 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좋은 모델이 되도록 해야 한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교에 근무를 하면 선생님들은 긴장하고 학생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도록 노력을 많이 한다. 학생들이 모범적인 학교에 근무를 하면 학생들에게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을 한다. 학생들이 나태하면 선생님들도 같이 나태해지고 사욕만 추구하게 된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많은 것을 얻어 가려고 눈을 반짝이며 노력하면 학교 경쟁력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학교란 한 번 개교되면 일반 기업이나 사업장보다 오랫동안 존속된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학생들이 그 곳에서 사회에 날아갈 날개를 키우게 된다. 그래서 백년지대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장기간 존속할 수 있는 교육철학이 있어야 하며, 오로지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사람을 키워내는데 학교구성원들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학교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인큐베이터이다. 학교에서 건강하게 사회로 나온 아이는 사회의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는 만큼 학교 교육은 어떠한 일보다 우선시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정재훈 칼럼리스트 기자 masinar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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