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래피의 사색 # 84 '사랑 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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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래피의 사색 # 84 '사랑 Part.2'

# 84 '사랑 Part.2'
기사입력 2016.12.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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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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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동효(DJ래피)] 

 

지난 주말, 또 한번의 결혼식 사회를 봐주고 왔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또 여러번의 똑같은 질문을 마주해야 했다. "결혼 안하니?" 앵무새 같은 질문과 앵무새 같은 대답들이 오간다. 생각도, 가치관도 서로 다른 거니까 난 그냥 "관심에 감사합니다" 하고 넘어간다.

 

평생 상대방의 성을 독점하는 계약이라는 결혼에 대한 칸트의 정의는 매우 유명하다.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가? 그것이 가능하려면 사랑은 실체여야 하지만, 사랑은 추상적이며 관념적이다. "사랑은 외부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일 뿐이다"라고 했던 스피노자의 말처럼 사랑은 생동감을 증대시키는 과정이다. 하지만 결혼이 개입되는 순간, 사랑 이외의 것들이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든다. 둘 만의 사랑이었던 것이 이제는 두 집안의 사랑이 되었다. 결혼과 동시에 싱글 시절보다 해야 할 역할도 많고, 책임도 많아져 버거워지는 것은 자명한 논리다. 결국 존재 양식으로의 사랑이 소유 양식의 사랑으로 돌변한다. 이는 사랑하는 대상을 구속하고 지배함을 의미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일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로 통해 사랑을 하게 되는 결합. 하나의 이기적인 생명체가 또 다른 이기적 생명체를 만나 둘이 하나가 된다. 구애를 하는 동안에는 누구나 생산적이고 능동적이어서 생기가 넘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결혼과 더불어 상황은 급반전된다. 결혼은 칸트의 정의처럼 쌍방의 성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독점할 권리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상대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결혼과 동시에 사랑은 이제 소유하는 무엇, 하나의 재산이 된다. ‘그 정도 돈벌이면 괜찮겠지라던가 나이가 찼으니라던가 친구들은 다 갔는데 나만 혼자라서결혼을 한다면 백퍼센트 불행하다. 결혼으로 인해 인생이 뒤바뀌고, 내 배우자로 인해 행복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인생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

 

이 쯤에서 사무엘 존슨의 이야기를 한번 들여다 보자. "일반적으로 결혼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남녀 한 쌍이 우연히 아니면 일부러 기회를 마련하여 서로 만나게 되고, 그들은 서로 예의 바른 행동을 취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키우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그 결과 결혼을 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단정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동안 눈에 씌웠던 콩깍지 때문에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진면목을 이내 발견하고 만다. 그런 뒤 두 사람은 그저 다툼으로 인생을 소모해 나가면서 자연의 섭리를 잔인하다고 비난할 뿐이다."

 

# 요약.

 

권태기의 부부들은 사랑의 부재를 놓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원인 분석에 들어간다. 사랑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잘못된 기대감이 결국 사랑을 정지시킨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상상의 날개에 편승한 찬란한 오해라고, ‘나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는 말은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일지도 모른다고 법정 스님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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