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래피의 사색 #107 '낙타, 사자, 어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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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래피의 사색 #107 '낙타, 사자, 어린아이'

#107 '낙타, 사자, 어린아이'
기사입력 2017.01.0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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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래피 사진 1.jpg
[사진=김동효(DJ래피)]
 
지난주에 어떤 학생이 내게 말했다. "교수님, 저 요즘 의욕이 없어요. 수많은 경쟁자들 가운데 제가 어떻게 살아남을지 확신도 없고 자신이 없어요."라고.
 
항공학적으로 꿀벌은 날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꿀벌은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 날아다닌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래는 나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긍정성이다. 그러므로 <>를 무한 긍정해야만 한다.
 
1988'담다디'라는 곡으로 전국을 충격과 공포로 전율케했던 이상은. 이상은의 또다른 이름은 Lee-tzsche. 그렇다, 그녀도 나처럼 니체를 좋아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을 넘어서>, <비극의 탄생> 등을 읽어나가다 보면 개성없는 인간, 자기만의 스타일이 없는 인간에 대해 사색하게 되며 우리에게 좌절을 가져다주는 그 근원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니체는 '좋은 것''인간 안에서의 어떤 힘-스피노자는 이것을 '코나투스'라 불렀다-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나쁜 것''그 힘이 약해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니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기쁨(또는 좋음)은 코나투스를 증진시키는 것이고, 슬픔(또는 나쁨)은 코나투스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도덕을 '모럴'이라고 부른다. 스피노자는 도덕에 '에틱'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에티카>를 썼다. 모럴은 집단 개념으로서의 도덕을 말하는 것이고, 에틱은 개인의 도덕을 말한다. '우리'가 주어가 되는 모럴에서는 선(Good)과 악(Evil)의 개념이 사회적으로 정해진다. 살인, 강간, 방화, 절도 등이 그것이 되겠다. 그러나 ''가 주어가 되는 에틱에서는 좋음(good)과 나쁨(bad)의 개념이 각각의 개인마다 다르다. 음악은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나쁜 것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입장에서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판단력의 부재로 인해 사람들은 늘 불안해하고 고통받는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항상 모든 판단의 주어가 <>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니체가 강조한 것은 일체의 선(Good)과 악(Evil)을 배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주어로 하는 선, 악의 구분을 넘어서 ''의 좋은 것(good)과 나쁜 것(bad)을 스스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존재를 낙타로 표현했다. 낙타는 의무의 존재다. 내가 질 필요가 없는 짐을 지고 가는 거. 낙타가 지고 가는 술이 낙타가 마시는 게 아니지만, 싫다고 말 못하고 낙타는 나른다. 자기만의 좋음과 나쁨의 기준이 없고 사회가, 또는 부모가 정해준 기준대로 사는 것이 바로 낙타다.
 
낙타가 좋음과 나쁨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게 되면 이제 사자가 된다. 사자에게 감히 술을 나르게 할 수는 없다. 사자 등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으려면 사자를 죽여야 하는데, 그러다 내가 죽을수도 있다.
 
그 다음 단계는 어린아이다. 어린아이가 의미하는 것은 스타일, 즉 개성이다. 어린 아이는 해변가에 가면 모래성을 만들고 부수고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한다. 자신만의 스타일, 개성이 있는 사람은 얽매이지 않는 행동이 가능하다.
 
# 요약.
 
니체의 철학은 스타일, 즉 개성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가면서 낙타를 벗어나 차례로 주체적인 사자와 어린아이로 변할 수 있다. 자기만의 확고한 좋음(good)과 나쁨(bad)이 정립되어 있는 사람은 불안함이 있을 수가 없다. 어찌 하루하루가 소중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 철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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