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래피의 사색 #124 '지랄 총량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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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래피의 사색 #124 '지랄 총량의 법칙'

#124 '지랄 총량의 법칙'
기사입력 2017.01.1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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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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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동효(DJ래피)]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자기의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웬만해선 잘못한 일도 그냥 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그러면서 남의 잘못은 못 봐주는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다. 어차피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 실수는 필연이라해도, 자신에게 엄중한 사람은 잘못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반드시 반성하고 돌이켜 두 번 다시 잘못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신에게 엄중하고 상대에게는 관대하라는 노자의 말을 항상 기억하자.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동안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 이라는게 정해져 있는데, 젊었을 때 그걸 다 쓰고 얌전히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늦게 찾아온 지랄을 주체 못해 나이 들어 여러 가지 지랄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지랄 총량의 법칙이다. 2015, 41살이 되는 나는 내 인생의 지랄을 10, 20, 30대에 골고루 나누어 모두 다 소진해버렸다. 고로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겸손하지 못했던 지난 시절이 가장 부끄럽다. 이제는 그런 부끄러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오롯이 나 자신의 수양을 위해 깨어나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쉼없이 글을 읽고 사색하며 노력한다. '래피의 사색'을 쓰면서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것들을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과 존중이란 두 가지 핵심 키워드를 바탕으로 삼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이 지향하는 최후의 선은 존재에 대한 사랑이다. 모두가 바라고 꿈꾸며 희망하는 세상,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고 사랑받고 이해받는 것. 사랑받는 사람보다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존중받으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존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편견은 인간관계를 가로막는 불신의 벽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각 계층 간의 소통 단절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서로를 질책하고, 억압하고, 공격하는 등 남탓의 과잉과 사회적 몸살로 넘쳐난다. 아무리 좋은 능력과 재능을 가졌다 하더라도 덕이 없고 편견에 매여 있다면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사람들이 점점 곁에서 떠나간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인간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 요약.
 
관중은 '나를 낳은 것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다.'라고 말했고,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것으로 인해 탄압을 받는다면 당신을 위해 싸우겠다.'라고 말했다. 관중과 볼테르는 상황은 다르지만 둘 다 상대방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이것이 편견없는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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