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래피의 사색 # 200 / '후(厚)와 흑(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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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래피의 사색 # 200 / '후(厚)와 흑(黑)'

기사입력 2017.03.04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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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래피 사진 1.jpg

[사진 = DJ 래피]

사면초가(四面楚歌), 금의환향(錦衣還鄕), 다다익선(多多益善) 등의 고사성어는 모두 '초한지(楚漢志)'가 그 출처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접해온 고전 게임인 장기도 '초한지'에서 나온 것이다. 장기판에서 '()'는 항우를, '()'은 유방을 뜻한다. 또한 병법에 나오는 배수진이란 말은 한나라의 명장 한신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한 왕 유방에게는 건국 3걸이라 불리는 뛰어난 부하가 셋 있었으니 장량, 소하 그리고 한신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능력은 유방의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나의 계책은 장량에 미치지 못하고, 행정은 소하에 미치지 못하고, 전투는 한신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이 세 영웅의 능력을 잘 활용해 천하를 제패했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승자가 된 다음 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한나라였다. 개국 일등공신은 당연히 책사 장량, 대장군 한신, 그리고 군수참모 소하였다.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장기판 위에서 살아 움직인다. ()의 입장에서 보자면 차(), (), ()가 장량, 소하, 한신이 되겠다. 개국공신은 나라를 세우고 나면 근심거리로 변한다.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뛰어난 재능을 익히 알고 있는 유방으로서는 마음이 편치 못 했다. 그들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사 장량은 이런 유방의 심사까지도 정확하게 헤아리고 있었다. “세 치의 혀로 제왕의 스승이 되고, 제후의 자리에까지 오른 영달만으로도 저에게는 과분합니다.” 장량은 3만 호의 식읍을 마다하고, 마지못해 받은 1만 호의 식읍도 얼마 안 가 버린 채 식솔들을 데리고 무릉도원으로 숨어들어 방원각이라는 정자를 지어 그곳에서 조용히 글을 읽으며 천수를 누렸다. 소하 역시 대업을 이룬 후 자신의 명예를 포기하며 사리사욕에 눈먼 사람처럼 연기를 하면서까지 유방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았으나, 아쉽게도 한신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왕뿐만아니라 스승도 겸손한 제자를 좋아한다. 조직이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놓고 상사의 능력을 앞지르고 자리마저 넘보려는 부하 직원을 반가워할 상사는 없다. 설사 상사보다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말 것이며 잘난 척하지도 말아야 한다. 내가 더 잘 알고 능력이 있어도 때로는 잘 못하는 척, 잘 모르는 척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후()와 흑()이다. 후는 말하자면 두꺼운 얼굴이며 흑은 검은 얼굴이다. 아무리 공이 많고 능력이 출중한 부하 직원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거나 권위에 도전한다는 생각이 들면 경계할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 역시 <군주론>에서 인간은 두려워하던 자보다도 애정을 느끼던 자에게 더 가차 없이 해를 입힌다. 원래 사람은 이해타산적이어서 단순히 은혜로 맺어진 애정쯤은 자기와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기회가 생기면 즉시 끊어버리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이는 동서양을 막론한 보편적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다.

 

1993년 개봉했던 영화 <패왕별희>에서 뛰어난 연기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장국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을 것이다. 그가 열연했던 배역은 우희(虞姬)였다. ‘서초패왕 항우가 사랑하는 여인 우희와 이별하다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영화의 배경은 중국 현대이지만 그 소재가 된 경극 <패왕별희>의 배경은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놓고 다투던 진나라 말기다. 항우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힘을 가졌지만 유방에 비하면 정치적 능력이나 지도력 등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바로 자만이었다.

 

그 유명한 홍문의 잔치(鴻門之宴)에서 유방과 항우의 운명이 엇갈린다. 잔치마당에 유방을 불러놓고 항우의 사촌 항장이 칼춤을 추다가 항우가 손짓을 하면 유방을 죽인다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그러나 춤이 끝나가도록 마음 약한 항우는 결정을 못했고, 그 사이에 유방의 모사 장량이 보낸 번쾌가 유방을 빠져나오게 한다. 유방이 도망친 것을 알고 항우의 모사 범증은 길게 탄식한다. “소인배하고는 일을 도모하지 못하겠구나. 이게 바로 항우다. 장차 항우에게 천하를 빼앗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히 유방일 것이다.” 과연 범증의 예언대로 일이 돌아갔고 항우는 해하에 이르러 한()의 군대와 대치하게 된다. 한의 군대에 포위된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 바로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면팔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랫소리에 군사들은 고향 생각에 젖어 사기가 떨어지고, 항우는 파국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항우는 마침내 사랑하는 여인 우희와 아끼던 말을 불러 이별의 술잔을 나눈 뒤 오강(烏江)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 요약.

 

항우는 성격이 거칠었고 사람을 제대로 부릴 줄 몰랐다. 그래서 그의 휘하에 있던 한신조차 유방에게 가고 말았다. 명 태조 주원장과 더불어 중국 역사에서 농민 출신으로 왕조를 세운 단 두 명의 황제 중 하나였던 유방은 사람을 다룰 줄 아는 뛰어난 지도력과 세상을 아우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두껍고 검은얼굴 뒤에 자신의 감정이나 입장을 숨길 줄 아는 후흑(厚黑)’의 대가였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항우 같은 인물은 애초부터 유방의 상대가 못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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