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래피의 사색 # 201 / '대체 왜?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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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래피의 사색 # 201 / '대체 왜? (Why)"

기사입력 2017.03.0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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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래피 사진 1.jpg

[사진 = DJ 래피]

소크라테스는 입만 열면 질문을 던졌다. 그의 철학은 질문에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났다. 소크라테스의 그러한 스킬을 흔히들 산파술이라고 부른다. 산파는 산모를 대신해 아이를 출산할 수 없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산모는 자신의 힘만으로 아이를 낳아야 한다. 진리도 마찬가지다. 스승은 조력자일 뿐, 배우려는 사람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소크라테스는 끊임없는 질의응답으로 무지함을 깨닫고 스스로 진리를 추구하도록 이끌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크라테스는 닮고 싶은 사람으로 존경받았으나, 아테네 지도층의 입장에서 소크라테스는 눈엣가시였으며 청년들이 소크라테스의 사상에 동화될 것을 우려해 결국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워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말도 안 되는 혐의를 씌워 사형 판결을 내렸다. 그들은 질문의 무시무시한 힘을 알았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했지만 법의 기강을 세우고자 독배를 마셨다. 소크라테스가 70, 플라톤이 28세였던 BC 399년의 일이다.

 

사실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는 살려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재판 자체가 부당한 일이었기에 그들에게 잘못을 빌고 동정을 호소하는 식으로 연기하거나 추방형을 제의하는 등의 방법도 있었다. ‘크리톤에서는 죽마고우인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에게 돈으로 감옥의 간수를 매수해 탈출할 것을 권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동의하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그것이 가장 천한 노예나 할 법한 짓이라며 비열함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만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스스로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은 끊임없는 질문이다. 질문은 성찰반성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자신이 무엇을(What) 하는지는 다 안다. 또 그것을 어떻게(How) 하는지도 안다. 하지만 왜(Why) 하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당장 자신에게 한 번 물어보라. "나는 이것을 왜 하는가?"

 

누군가 "Why The Hell R U Doing This? (너 대체 그 짓을 왜 하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무슨 대답을 할 것인지 뻔하다. "F**k You. Because I Love It."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 음악을 듣고, 만들고, 믹스할 때 나는 행복하고, 몰입한다. 넘쳐나는 창작의 욕구를 해소시키기 위한 방법이 내게는 음악뿐이다. 나는 그림을 그린다거나 뭔가 다른 방식의 창작은 잘 할 줄 모른다. 아니, 음악 외에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겠다. 내 삶의 이유는 그저 음악하며 사는(Being)것이지, 스타 뮤지션이 되고자(Becoming)하는 게 아니다.

 

BeingBecoming은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쉽다. 스티브 잡스처럼 모든 제품을 유려한 디자인과 사용자 친화적으로 만들어 Mind-Blowing한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존재가 되려 하는 것"Being이고, XX 사업자처럼 자신이 끌어들인 하위 영업자들의 수익이 자신의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통해, (사실은 그렇게 되기도 힘들지만) 자기는 놀고먹더라도, 밑에 사람들이 잘 팔아주면 나는 불로소득을 통해 "부자가 되겠다"고 하는 게 Becoming이다. 동물을 치료하는 게 너무 행복해서 "수의사의 삶을 살고 싶다"Being이고, 수의사 그거 돈이 좀 되나? "수의사나 해볼까?"하는 게 Becoming이다.

 

# 요약.

 

질문하지 않는 삶에 올바른 방향이 자리 잡기는 힘들다. ""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성공과 성취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마약과도 같다. 마약의 쾌감에는 함정이 있다. 평상시의 쾌감이 0이라고 가정하면, 마약을 했을 때 쾌락감이 30으로 올라가는 것은 맞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그땐 다시 0이 되는 게 아니라 (-)20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 후엔 더 강한 마약을 해야 30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그 이후엔 (-)40으로 떨어지고 만다. 한 번 정상에 올라갔던 사람이 추락하면 더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나의 모든 것은 무에서 시작되었다. 하여 나는 모든 것이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닌 그저 0으로 수렴하는 삶을 살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 돈도 더 벌고 싶지도 않다. 지금보다 더 벌고자 한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져야 하고 신경을 써야 하고 고민하고 스트레스받을 게 뻔하다. 늦잠자고, 책 읽고, 음악 듣고, 음악 틀고, 음악 만들고, 그 재주로 적당히 돈도 벌고, 술 마시고, 놀러 다니는 지금이 나는 더없이 좋고, 가장 행복하다. 이런 내 삶에 도대체 뭐가 부족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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