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인터뷰] 남예종 빈대욱 교수 그의 솔직 담백한 인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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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예종 빈대욱 교수 그의 솔직 담백한 인생 스토리

기사입력 2017.03.2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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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정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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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빈대욱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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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군에서 오랜 시간 복무를 하고 전역을 하셨다고 소개를 해드렸는데요. 해군에 처음 입대하셨던 게 언제였습니까?

 

1989215일 해군 군악병으로 입대했습니다.

 

2. 1989년이면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데, 어떤 계기로 해군 군악대에 지원을 하시게 됐습니까?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하셨나요?

 

해군군악대에 입대하면 음악을 좀 더 잘 할 수 있고 제대로 배울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1때 작곡과 트롬본을 배우면서 음악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워 레슨비가 없었는데 어머니가 쌀을 시장에 내고, 쌀로 대신해서 마련해준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저희 어머니의 지원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3. 그럼 전역은 언제하신 겁니까? 군을 전역할 때까지 계속 군악대에서 근무를 하신 건가요?

 

해군군악대에서 20여년간 근무하다가 2009112일부로 국방부군악대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기서 5년간 근무하다가 20141231일부로 명예 전역을 했습니다. 2510개월 군복무를 한셈이죠. 해군군악대에서 근무하면서 서울, 진해, 부산, 제주 등에서 전국 지역을 돌면서 군복부를 하였고, 세계 50여개국을 순방하면서 문화사절단으로서 대한민국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를 했습니다. 정말 보람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4. 2510개월 동안 군악대에 계셨으면 그야말로 군악대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먼저 해군군악대에서는 어떤 임무들을 수행하셨습니까?

 

군내외 각종 의식행사 및 입출항 의식행사, 국빈행사, 대한민국 해외 순항훈련 참가 및 현지 환영, 환송 행사 그리고 합동공연, 해군사관학교 임관식 및 졸업식, 국군의 날 행사, 해군국제관함식, 부산아시안게임 개폐회식 및 시상식,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개폐회식 및 시상식, 대민지원 행사 및 연주회, 정기연주회 및 음악회 등 각종 행사 공연을 수행하였습니다.

 

5. 해군군악대는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해군군악대 복무하시면서 수많은 무대에 서셨을 텐데,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공연 한 두 가지만 소개를 해 주신다면요?

 

해군군악대가 실력을 인정 받는 것은 연주 실력에는 상하 계급이 없습니다. 만약 병사가 간부보다 실력이 뛰어나면 계급과 상관없이 수석자리에서 연주합니다. 그러니 실력 없이는 그 자리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간부라고 연습안하면 인정받기가 어려운거죠.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는 97년 캐나다 벤쿠버 방문 연주입니다. 캐나다 교민들이 한국 해군이 입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 동안 잠을 못이루었다며 마지막까지 연주를 관람하면서 감동의 공연을 선사했던 것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6. 그리고 군에 계시면서 국군교향악단의 창단 멤버이자 공연기획관으로도 활약을 하셨다고 하던데요. 국군교향악단은 군악대와는 다른 건가요?

 

국방부군악대는 청와대 국빈방문시 환영·환송 행사지원과 합참, 국방부 주요행사 및 정기연주회 등 국빈방문 국가행사가 주요 임무라 하면, 국군교향악단은 각군 순회연주회, 해외 초청 공연, 예술의전당 정기연주회, 각군대 찾아가는 군장병을 위한 소규모 음악회 등으로 임무를 수행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6-1. 공연기획관으로서는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요?

 

국방부 국군교향악단은 20101월 창단되었는데 창단멤버로서 연주회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체를 기획 총괄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자리가 공연기획관 자리입니다. 2010년에는 예술의전당 창단 연주회, 미국 캘리포니아주 5개도시 초청 순회공연, 베트남, 중국 수교 초청 음악회 및 각군 순회연주회 등을 기획하고 계획 수립부터 예산집행 및 공연결과 보고까지 총괄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년간 50회가 넘는 순회연주회를 총괄 기획하다보면 남들은 간단하게 생각하겠지만 병력관리부터 마지막 공연 마무리까지 종료되면 몸이 파김치가 됩니다. 책임감 없이는 못하는 그정도로 힘든 직책이기도 한것이죠.

 

7. 군에서 임무수행하느라 바쁘셨을 텐데, 교육대학원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 하셨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어떻게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셨고, 최우수논문상 까지 하셨는지 그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군생활 자체가 힘들잖아요 군인이었기 때문에 강한 정신력과 인내심으로 지치면 지고 미치면 이긴다 라는 신념으로 버티지 않았나 봅니다. 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 어떤 역경과 환경, 조건은 저에게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교육대학원은 현직 교사 이거나 교육청 공무원 분들이 대부부입니다. 그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따라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퇴근이후에는 오로지 학업에만 정진했고 주말도 없이 도서관을 떠나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결과로 교육대학원 전과목 A+ 전체 수석 졸업과 단 한명에게 수여되는 최우수 논문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강한 파도가 강한 어부를 길러내듯 어떤 환경에 굴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꿈과 목표를 향해 실천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8. 주경야독을 하면서 대학원공부까지 열심히 하신 만큼 전역 후에도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지금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지도 말씀해 주실까요?

 

현재 남예종 예술실용전문학교에서 공연예술학부장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추계예술대학교에서도 행사공연기획을 지도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NGO꿈알월드 부회장으로 직장인, 청소년, 군인, 학생들에게 가슴뛰는 위대한 꿈을 심어주고 찾아주고 그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행복한 삷을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9. 음대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군요. 그런데 얼마 전에 해군에 악기를 기부하셨다고요? 어떤 악기를 기부하셨습니까?

 

알리지 않고 조용하게 기부한다는 것이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부끄럽습니다. 이번에 제가 기부한 악기는 독일 콜베르그(KOLBERG)사에서 매년 소량의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세계적인 명품악기입니다. 팀파니는 반구 모양의 통에 한 장의 가죽 피를 댄 드럼류의 타악기로 작곡자의 의도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음으로 조율이 가능하며 오케스트라에서는 빠질수 없는 타악기의 왕으로 불리는 악기입니다. 우리나라 군악대 역사는 1901독일 해군군악대장 프란츠 에케르트에 의해 탄생되어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대한제국 국가를 작곡였으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 시켜, 국민들을 위한 무료공연 등 혼신을 다한 훌륭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랑하는 한국군악대 발전에 열과 성을 다하다 1916년 회현동에서 외롭게 숨을 거두어 현재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서거한지 올해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 해군군악대가 올해 70주년이 되는 뜻깊고 의미있는 날에 이 악기를 기증한 것입니다. 다시한번 해군에 무한한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10. 우리나라에 몇 개 없는 데 다 가 상당히 고가의 악기라고 들었거든요? 혹시 가격이 어느 정도나 하는 겁니까?

 

우리나라에서는 KBS교향악단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으며, 국방부에서는 해군이 이번에 처음으로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콜베르그사에서 제작한 현 싯가가 12천여만원 상당하는 고가 명품 악기입니다. 20161127일 여의도 kbs홀에서 해군군악대 창설 70주년 기념 연주회시에는 이 악기가 무대에서 초연 연주를 하였습니다.

 

11. 희귀한 악기를 해군에 기증을 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26여년간 해군으로 받은 무한한 사랑을 잊을 수가 없어서 모군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해군 발전의 염원을 담아 미약하나마 보답하고자 이번 악기 기증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모군과 함께한 청춘을 통해 국가에 봉사 할 수 있었다는 깊은 감사를 깨달았으며 동료 전우들의 격려속에 미치도록 공부 할 수 있었고, ·박사과정까지 끊임없는 목표를 설정하여 도전할 수 있는 신념을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하고 감사한 삶이었습니다. 제가 현재의 위치에 이를수 있던 것은 모두가 해군 덕분이고 존재하는 이유도 해군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12. 팀파니를 기증하시면서 해군에도 직접 다녀오신 걸로 아는데,

혹시 군악대들도 만나보셨습니까?

 

네 직접 다녀왔습니다. 해군군악대 전 간부 및 해군, 해병대 군악대원들이 환영해 주셨습니다.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김판규 해군참모차장님과 최태복 정훈공보실장님 조동민 군악대대장님께서 환영식과 기증식을 성대하게 치뤄주셔서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3. 해군에 직접 가서 후배들에게 기증을 하고 합주하는 모습까지 보신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습니까?

 

모군에 전달되는 모습을 바라보니 주인을 바로 찾은것 같아 무척이나 감사하고 감개무량 했습니다. 후배들이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서 깊은 울림이 연주회를 통해 국민과 대중들에게 감동으로 여운이 전달될 때 명품 악기로 빛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14. 해군과 군악대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 지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느낄 수가 있었는데요. 교수님에게 군 생활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에게 군 생활은 청춘을 바바쳐 국가에 봉사 할 수 있었고 해군의 수혜를 받아 공부를 다 할 수 있었으며, 현재의 위치에 올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해군 덕분이고 해군에 많은 빚을 진 것입니다. 군 생활통해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오대양 육대주를 방문하는 세계일주 기회도 3번씩이나 해군에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 여정을 통해 저는 각 나라의 문화를 배웠고 그것이 지금 넓은 시야를 가질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15. 앞으로 어떤 계획, 목표를 가지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대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바르게 가르치는데 전념하고 매진할 생각입니다. 또한 전세계인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전도하는것이 임무이기도 합니다.

 

16. 끝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사는 사람들에 응원의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저의 좌우명이 '지치면 지고 미치면 이긴다'입니다. 꿈을 위해 지치거나 포기하지 말고 한 번 미쳐야합니다. 지금 바로 꿈을 가지고 목표를 정하세요.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져야합니다. 그럼 반드시 성공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해’ (l like my self) 그리고 나는 할 수 있어‘ (l can do it) 라고 계속 주문하세요.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꿈은 이뤄집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무궁한 꿈으로 펼쳐진 희망찬 항해를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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