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래피의 사색 # 225 / '읍참마속(泣斬馬謖), 내 자식의 강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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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래피의 사색 # 225 / '읍참마속(泣斬馬謖), 내 자식의 강도질'

기사입력 2017.03.2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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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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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DJ 래피]

"시민 사회는 권력과 자본에 의해 왜곡된 우리의 생활세계를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공적 의사소통의 장이다."라고 주장했던 위르겐 하버마스. 현재 광화문은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하버마스가 언급한 "공적 의사소통의 장소"임에 틀림없다.

 

1945년 당시 하버마스는 열여섯 살의 청소년이었다. 그해 11월부터 시작된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전범 재판을 지켜보며 하버마스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정치적 의미를 알게 되었다. (불과 2년 전, 소년 하버마스는 히틀러를 찬양하는 소년단인 '히틀러유겐트'에 들어가 6개월가량 복무했었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제야 깨닫고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자기반성을 했고, 그 반성은 그가 비판적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자기반성'에 밑줄 좀 긋고 시작하자.

 

내 주변에도 '그녀'를 찍었던, '그녀'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그런데 간혹 "제가 '그녀'를 지지했던 사람인데 쪽팔려서 어떻게 광화문 가나요.." 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녀'를 찍었던 것이 소중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했던 것이었듯이, '그녀'가 저지른 파렴치한 일들이 만천하에 다 드러난 이상 "아닌 건 아닌 거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 또한 당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거다. 그러지 않고 숨어있는 것은 오히려 '그녀'의 범죄를 더 도와주는 꼴이 된다. 그리고 행여라도 주변에 '그녀' 지지했던 사람 있으면 그 사람한테 욕하지 말자. 지나간 것은 지나간 거다. 연인 사이에서도 과거는 묻지 않는 게 예의 아닌가. 욕한다고 되돌릴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분들이 사람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매몰비용은 잊고 이제라도 그들 역시 '그녀'를 지지했던 게 엄청난 실수였다는 걸 깨닫게 만들어서 세상을 바로잡는 데 한 명이라도 더 힘을 합하면 된다.

 

'그녀'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그 본질은 "'그녀' 찍어서 나라 망하게 해야지"라는 생각이 아니라 "사람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 주겠지..." 하는 믿음이었을 거다. 그런 마음이라도 없었다면 전직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조실부모해서 안쓰럽다는 이유로, 평생을 백수처럼 지낸 정치인을 찍기는 힘들다. ('그녀'의 국회의원 시절 출석률은 놀랍게도 0~4%!!) 물론 아직도 현 상황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우상숭배하듯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다. 웃긴 건, 그런 사람들 중에 소위 "잘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평생을 공주처럼 살아온 백수 정치인은 불쌍하다고 애처롭다고 여기지만, 뼈 빠지는 박봉에 컵라면으로 배 채우는 자기 새끼들은 불쌍한 줄 모르는 사람들이 다수다. 그 자신이 착취당하며 사는 민초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착취하는 대상에 아이러니하게도 귀신 홀리듯 홀려 끝까지 막무가내로 숭배하는 사람들이다. 이건 마치 인질이 인질범에게 심리적으로 공감하거나 연민을 느끼는 현상인 '스톡홀름 증후군'과도 비슷하다.

 

현재 '그녀'의 지지율은 4%. 남은 4%가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누구는 돈 안 처먹었냐, 도둑놈 아닌 대통령이 있었느냐, '그녀'만 갖고 그러느냐" 등으로 집약된다. 이거 아주 무서운 사상인데,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내 자식이 강도질을 했는데, "누구는 강도질 안 했냐, 우리 자식만 강도질했냐?"라며 달려드는 거나 다름없다. 지난 날에 누가 강도질을 했건, 그게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내 새끼라도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게 맞는 거다. 벌을 받아야 할 자가 오히려 뻔뻔스럽게 떡하니 버티며 어떻게든 또 다른 불법과 편법으로 빠져나갈 생각만 하니 국민들이 지금 미치고 환장하는 거다. 게다가 그 강도질의 수위가 부관참시급인데, 내 자식이라고 계속 감싸서는 되겠는가? 벌을 받을 자는 벌을 받게 하는 것, 그래서 앞으로는 강도질 없는 나라로 만들어 가는 것, 그게 올바른 방향이다. 외신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라며 주목하고 있고, 지난 주말엔 헌정 사상 최대인 전국 232(876월 항쟁의 두 배 이상. 삼국지에 나오는 대군도 많아야 100만 대군이다.) 촛불이 들고일어나고 있다. 최악의 범죄자를 옹호해주고 더 많은 악을 저지르도록 동조해주는 것, 그것은 생각의 차이로 존중받아야 할 사안이 아니며 다양성 인정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이다.

 

# 요약.

 

1931년 흉악한 살인범 쌍권총 크로울리가 사형선고를 받고 전기의자에 앉게 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니 내가 이렇게 된 것도 모두 내 탓이지." 라고 생각하며 참회했을까? 천만에. 그의 마지막 말은 억울하게 이런 꼴을 당하다니!” 였다. 그 외 모든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자들 역시 하나같이 자신을 악한 자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녀'"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지?" 라고 했다고 한다. 할 말이 없다. 읍참마속, 제갈량도 분명 마속의 목을 벨 때 눈물을 머금고 슬퍼하며 주저했으리라. 정의와 올바른 법 적용을 위해,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저런 대통령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읍참그녀(泣斬槿惠)'의 자세로 칠 것은 쳐주시기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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